NameDrop
매년 여름 열리는 Apple의 소프트웨어 행사인 WWDC(Worldwide Developer Conference, 세계개발자회의)의 메인 이벤트는 바로 같은 해 9월 무렵에 공식 릴리즈되는 소프트웨어를 공개하는 키노트이다. 이번 발표에서 애플은 소통을 컨셉으로 하여 자사 OS의 전화, 메시지, FaceTime 앱의 개선 사항을 발표했는데, 그중 iOS와 watchOS에 탑재될 예정인 NameDrop(네임드롭)이라는 기능 이 특히 주목받았다.
네임드롭은 iPhone이나 Apple Watch를 서로 맞대었을 때, 연락처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연락처에 등록된 항목 중 원하는 정보(전화번호, 이메일 등)만 선택하여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기기를 가까이 두었을 때 즉시 공유되는 것은 아니며, 받기만 할지 공유할지 미리 선택할 수 있다.
파란색 말풍선
네임드롭이 왜 iMessage(아이메시지)를 잇는 새로운 파란색 말풍선인지를 알아보기 전에, 파란색 말풍선이 의미하는 바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11년 iOS 5부터 애플은 애플 기기 간 사용되는 메신저인 아이메시지와, SKT와 같은 통신사를 통해 타사 기기로 전송되는 문자 메시지(SMS/MMS)를 하나의 메시지 앱 안에서 함께 제공하고 있다. 애플은 같은 앱 안에서 아이메시지 대화는 파란색 말풍선으로, 문자 메시지 대화는 초록색 말풍선으로 표시함으로써 사용자가 현재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 구분하여 표시한다.
똑같은 메시지 앱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메시지에 답장, 리액션, 전송한 메시지 수정과 같은 기능을 아이메시지에서만 작동하게 함으로써 애플은 문자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아이메시지보다 모자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애플은 이러한 아이메시지 전용 기능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인 RCS(Rich Communication Service)를 의도적으로 자사 제품에 탑재하지 않으면서 iOS와 Android 사용자 간 메시징 경험을 계속해서 악화시키고 있다.
이 두 색상 간 메시징 경험의 차이는 주변 친구들과 영향을 많이 주고받는 청소년들에게 특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5명의 그룹 채팅에서 4명이 아이메시지, 1명이 문자 메시지를 사용한다고 하자. 4명은 자신들이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사용하던 아이메시지의 다양한 기능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아이메시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한 명은 “애플 기기를 구입하여 아이메시지로 참여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거나 아예 그룹 채팅에서 열외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시작으로 하여 이와 같은 문제가 제기되면서, “파란색 말풍선”이라는 용어는 애플이 자사 기기에만 배타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부르는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톡과 같은 타사 메신저가 아이메시지보다 널리 사용되기에 그룹 채팅에서 누군가 배제되는 가능성은 작겠지만, AirDrop(에어드롭)과 같은 애플 생태계 전용 기능이나 iOS에서만 동작하는 소 셜 미디어 앱으로 인한 우리나라 청소년의 아이폰 선호 현상의 경우 이미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우리가 간과한 것
아이메시지 그룹 채팅에 참여하여 전용 기능을 사용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에어드롭으로 공유하며, 애플 뮤직에 있는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일은 일종의 공유된 경험을 형성한다. 나는 올해 애플이 발표한 연락처 공유 기능인 네임드롭이 애플이 만들고자 애를 쓰는 이 공유된 경험을 형성하는 데에 또 한 번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네임드롭이 공유된 경험을 제공하는 다른 많은 기능과 특별히 다른 부분이 있다면,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을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주는 기능이라는 점이다. 전화 앱의 다이얼 화면을 켜서 친구에게 휴대폰을 주고, 다시 받아서 이름을 적고 적은 이름이 맞는지 확인하는 번거로운 과정 없이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는 기능은 보다 매끄럽게 친구/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하는 경험을, 그것도 두 사람 모두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그 매끄러운 경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중학교에서 학년이 바뀐 후 학기 초에 새로운 반 친구를 사귀고자 내 자리 주변에 앉은 친구들과 연락처 교환을 하는데,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이 모두 네임드롭을 활용하여 연락처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것은 그렇게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닐 것이다. 특정 회사의 휴대폰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그 기술로 만들어지는 공유된 경험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또래 간의 소속감을 중요시하는 청소년들에게, 잠재적으로 소외감이나 주변 집단과 단절된 기분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수년에 걸쳐 사람들의 일상에 깊게 자리 잡게 된 스마트폰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커졌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폰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는 사회적 상호작용 과정에 깊숙이 통합되어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새롭게 형성하고 있다. 네임드롭과 같은 특정 소프트웨어가 어떤 집단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될 경우 그 집단에 속하기 위한 일종의 장벽이 생기고, 이는 해당 집단 안팎에 배타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원인은 다르지만, 디지털 기술을 통해 누군가가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키오스크 및 현금 없는 버스 문제와 같은 노인의 디지털 소외 문제와도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속성을 넘어 경험의 공유로
애플이 자신들의 생태계(Apple ecosystem, walled garden) 안에 사용자들을 가두고자 노력하는 기업 중 하나라는 점은 이미 유명하다. 이전까지는 아이폰에서 복사한 내용을 맥에서 붙여 넣을 수 있는 공유 클립보드나 아이패드를 맥의 모니터로 활용하는 Sidecar와 같은, 개인이 가진 다양한 기기 사이의 연속성을 극대화하는 기능을 통해 사용자들을 가두었다면, 최근에는 공유 메모나 공유 사진 보관함과 같은, 주변 애플 기기 사용자 간에 공유된 경험을 제공하는 기능들을 강화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노력의 일환인 네임드롭이 성공할지는 올해 가을부터 지켜봐야 하겠지만, 성공한다면 아이메시지와 비슷한 방향으로 사용자들을 자신들의 생태계 안에 가둘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번외: Bump는 왜 사라졌을까?
두 기기를 가까이 가져와 정보를 전달하는 아이디어를 애플이 처음 제시한 것은 아니다. 아이폰 3GS가 등장할 때쯤엔 이미 Bump(범프)라는 앱이 있었고, 이 앱을 통해 사용자들은 서로의 연락처뿐만 아니라 사진 등도 전송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워낙 기능적인 측면이 강조된 앱이다 보니 수익 모델을 찾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보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앱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진 공유도 잘 하지 않던 때에 앱을 켠 뒤 휴대폰을 부딪쳐 전화번호를 전송하는 일은 “굳이 안 해도 되는 경험”이지만, 수 기가바이트의 동영상을 몇십 초 만에 에어드롭으로 보낼 수 있는 시대에 휴대폰 번호를 불러주는 대로 서로 받아적고 있는 모습은 어쩌면 “뒤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10년 전과 지금의 데이터 전송 속도 차이 역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 3G 인터넷을 통해 범프 서버를 거쳐 사진, 연락처가 전송되던 속도는 지금의 아이폰에서 기기 간 Wi-fi 연결을 통해 에어드롭(네임드롭)되는 속도보다 훨씬 느렸 을 것이다.
iOS 17의 네임드롭에서의 연락처 공유가 범프와 달리 단순 전화번호 교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iOS 17을 설치하면 사용자는 자신의 사진이나 애니모지(캐릭터)을 이용하여 연락처 포스터를 만들 것을 제안받게 되는데, 네임드롭을 사용할 때 이 연락처 포스터가 상대방에게 전송된다. 보통 연락처에서 빈 칸으로 남겨지는 사진 필드가, 네임드롭으로 받은 연락처의 경우 얼굴 사진을 포함한 멋진 포스터로 표시된다는 뜻이다. 전화를 받는 상대방에게 네임드롭으로 보낸 쿨한 연락처 포스터를 띄워주는 것과 오직 이름 석 자만 표시된 화면을 보여주는 것은 막 울리고 있는 휴대폰을 보며 전화를 받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작지 않은 차이를 가져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