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5-1R 영문학과법 과제로 제출한 수업 내용 요약 및 에세이입니다.
공연으로서의 법
예일대 법학 교수 Jack Balkin 은 법을 문학적 텍스트를 넘어 공연예술로서 파악해 보자고 제안한다. 악보가 연주 없이 음악이 되지 못하듯, 법 조문 역시 해석자와 시민 앞에서 ‘연주’(공연)될 때 비로소 사회적 현실로 발현된다. 이때 입법자는 작곡가, 판사·변호사는 연주자, 시민은 관객 역할을 하게 된다. 연주자인 법 해석자는 단순히 문장을 현실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해석이 정당하다는 점을 관객에게 설득할 책임을 진다. 1992년 오페레타 “The Mikado”가 인종차별적 표현을 삭제·수정함으로써 재구성된 사례는, ‘좋은 해석’이 원문 보존이 아니라 오늘의 청중에게 가치 있는 의미를 전달하는 재창작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반대로, Slaughterhouse case에서처럼 법 조항에 대한 판사의 협소한 해석이 조항 자체를 사실상 폐기하기도 한다. 결국 법은 고정된 문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악보 또는 대본이며, 우리는 해당 법이 추구하려고 했던 본래의 이상을 오늘의 언어로 새롭게 연주해야 한다.
Katie Kitamura의 소설 “Intimacies” 가 묘사한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은 다국적 관객을 상대로 한 브로드웨이 급 공연장에 가깝다. 법정 내부에서 어떻게 증언해야 하는지가 치밀하게 코칭 되고, 통역사는 1인칭 화법으로 잔혹한 기억을 법률적 용어들로 번역한다. 증언은 실시간 동시통역, 속기사 기록, 서면 정제 과정을 거치며 반복적으로 재연된다. NGO와 언론이 ‘관람석’에서 ‘공연’을 감시하는 만큼, 단어 하나하나가 연출의 일부가 된다. 개인의 고통 서사는 번역과 기록을 거치며 행정적인 산출물이 된다.
미국 형사 사법 사상 최대의 ‘쇼’로 불린 O. J. 심슨 사건 은 법정 퍼포먼스의 위력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형사재판이 ‘합리적 의심을 넘어’야 하는 최고 수준의 입증을 요구하는 것과 달리, 민사재판은 ‘우세한 증거’만으로 책임을 인정하기에, 형사 재판과 민사 재판에서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변호인단은 DNA와 혈흔이라는 과학 수사 증거를 정면으로 반박하기보다는, 채혈량 1.5 mL의 행방, 부실한 증거 보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이 된 형사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부각했다.
결정적 장면은 법정에서 심슨에게 피 묻은 가죽장갑을 끼워 보이게 한 ‘연출’이었다. “If it doesn’t fit, you must acquit.”라는 변호인의 말은 배심원들의 결정을 흔들었다. 이 사건은 배심원 무효화의 예시로 거론되기도 하며, 법정이 사실 싸움에서 누가 이기는지뿐 아니라 ‘누가 더 설득력 있는 공연을 펼치는지’에 따라 결과가 갈릴 수도 있는 공간임을 잘 보여주는 예시이다.
정리하면, 법은 책상 위에서만 존재하는 조문이 아니라 무대 위 살아 있는 행위이다. 해석자는 악보를 새로운 시대정신과 청중의 감수성에 맞게 연주해야 하며, 시민은 그 연주를 통해 법의 권위와 정당성을 판단한다.
AI 아바타 시대와 무대로서의 법정
2025년 봄 미국 법정에서는 AI 아바타가 법정에 서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3월, 뉴욕주 항소법원에서는 1심에서 이전 직장을 상대로 패소한 Jerome Dewald가 AI 아바타가 등장하는 영상 을 통해 논리를 펼치려고 시도한 일이 있었다.
두 달 뒤, 애리조나주 마리코파 카운티 상급법원에서는 운전 중 시비 끝에(road rage) 총격으로 피해자를 숨지게 만든 피고인에 대한 형량 선고를 앞두고, 사망한 피해자 Chris Pelkey의 얼굴과 목소리를 AI로 재현한 아바타가 피고인을 용서하며 “다른 세상에서는 우리가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라고 말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두 사건 모두 실제 인간 대신 AI 아바타가 법정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지만, 판사들의 반응은 극적으로 달랐다. 뉴욕주 항소법원의 판사는 “나는 속고 싶지 않다”며 영상을 꺼 버렸고, 이후 Dewald는 사과 편지로 법원에 유감을 표명했다. 반면 마리코파 카운티 상급법원의 판사는 최종 판결문 낭독 과정에서 AI 아바타 영상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며, 피고인에게 검사가 구형한 9.5년보다 높은 10.5년의 형량을 선고했다.
상반된 반응의 이면에는 각 사건이 놓인 맥락적 차이가 존재한다. Dewald의 항소심은 이미 사실관계가 확정된 뒤 오직 법 적용의 적합성만을 다투는 법률심 절차였다. 이 단계에서는 새로운 증인신문이나 감정적 퍼포먼스가 원칙적으로 배제되고, 판사들은 오로지 논리적 주장과 문서에만 집중한다. Dewald는 자신에게 변호인이 없고(pro se), 말을 더듬고 긴장한다는 사실을 AI 아바타 사용에 대한 이유로 들었지만, 법률심이라는 절차적 특성상 Dewald의 AI 아바타는 감정 연출로 느껴질 수 있는 부적절한 퍼포먼스였고, 이 점이 판사의 즉각적인 거부로 이어졌다. 반면 Pelkey 사건은 사실심 단계였으며, AI 아바타 영상은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이 이미 내려진 후 판사가 형량을 결정하기 직전의 시점에 재생되었다. Pelkey의 AI 아바타는 사실관계를 뒤집는 새로운 증거가 아니라, 사건의 마무리와 치유를 위한 감정적 장치로 사용되었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정책적 분위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Pelkey의 유족들은, 피해자에게 진술 방식에 대해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하는 애리조나 주법의 조항에 명시된 방법 중 하나인, “법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디지털 매체”로서 해당 영상을 사용했다. 또한, 애리조나주 최고 사법기관인 애리조나주 대법원은 당시 이미 인공지능 운영위원회(Artificial Intelligence Steering Committee)를 구성하고, 어떤 상황에 어떤 AI 도구를 활용하여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고 적절하지 못한지에 대한 가이드라인 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 점은, 애리조나주 대법원 하위에 속한 마리코파 카운티 상급법원의 판사 역시 AI 아바타가 발생시키는 퍼포먼스적 효과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실제 형량 선고 과정에서 그 의미를 판단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AI 아바타의 등장은 어떤 방향으로든 신선한 충격을 주지만, 본질적으로는 법정이 사실은 원래부터 ‘계획된 퍼포먼스’의 공간이었다는 점을 환기하는 계기일 뿐이다. O. J. Simpson 사건에서의 장갑 시연처럼, 대부분의 재판에서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존재함을 법정의 구성원들은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법정에서의 연기가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일은 드물었고, 모두가 암묵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질서 속에서 법정 공연은 이어졌다. 이런 시점에서, AI 아바타의 법정 ‘데뷔’는 바로 그 계획된 퍼포먼스의 정점이면서, ‘어떤 퍼포먼스까지 허용되는지’ 실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여러 물리적 제약이나 말실수로 인해 무대 장악력을 잃을 수 있지만, AI 아바타는 오직 입력된 데이터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미리 계산된 감정을 영상이라는 결과물로 무한히 만들어 낸다. 법정의 퍼포먼스적인 측면을 노골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만약 AI 아바타가 법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복제할 수 있는 감정과 연출된 인간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된다면, 그때는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실수, 우발성, 예측 불가능한 진짜 감정과 같은 가치는 법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언뜻 보면 이런 인간적인 측면이야말로 계획될 수 없는, 진짜만이 줄 수 있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순간조차도 ‘기획된 실수’, 즉, 계획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연기로 소비될 수 있다. AI 아바타와 인간이 같은 무대에서 겨루게 되는 시대에는, 어디까지가 기획된 퍼포먼스인지가 더 불분명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오히려 중요해지는 것은, 법정이라는 공연장에서 연출가(판사)와 비평가(배심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AI 아바타가 법정에서 일상이 되면, 모든 증언과 진술, 논리가 사전 기획된 연기라는 사실은 훨씬 더 당연해진다. 더 ‘진짜처럼’ 말하는 것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워지는 것이다. 결국 특정 연출의 적절성을 판단하고 무대를 조율하는 연출가(판사)와, 배우들의 연기를 비평하는 비평가(배심원)의 역할은 훨씬 더 결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출가와 비평가가 더 ‘올바른’ 판단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AI 아바타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애리조나주 대법원이 AI 도구 활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미리 만들어두었던 것처럼, AI 기술이 법정 퍼포먼스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의미 있는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제도적 장치는 AI 아바타의 퍼포먼스가 법정에서 공정하게 다뤄질 수 있도록 판단 주체에게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배심원들이 감정적 효과에 지나치게 휘둘려 본연의 판단 기준이 흐려지는 배심원 무효화와 같은 상황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방어선이 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AI 아바타의 법정 진출은, 기술 찬반 논의를 떠나서, 법정이라는 공간의 공연적 특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계기가 되었고, 그러한 맥락 안에서 해석자(판사, 배심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