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의 새 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알파 미리보기 ). 글을 더 쓰기 쉬운 환경을 만들고 싶어 CMS를 떼내는 작업도 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새 블로그를 만드느라 정작 글을 쓰지 못하고 있어요.
새 블로그가 나오기 전까지는, 지난 학기에 과제로 제출했던 짧은 글들을 몇 주에 걸쳐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25-1R 영문학과법 과제로 제출한 수업 내용 요약 및 에세이입니다.
Jane Austen의 소설과 감정적 소유
Jane Austen의 소설은 18~19세기 영국 여성의 재산권과 상속을 제한했던 법 제도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Pride and Prejudice (오만과 편견)“와 “Sense and Sensibility (이성과 감성)“를 통해 그러한 법적 제약과 이를 우회하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들, 그 속에서 주체성을 형성하며 감정과 상상을 통해 ‘삶의 공간’을 점유해 나간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18~19세기 영국 사회는 여성을 법적으로 독립된 인격체로 간주하지 않았다. 특히 결혼한 여성은 coverture 에 따라 ‘feme covert’로서 남편에게 법적 정체성이 통합되거나 권리가 정지되었고, 재산 소유권·계약 체결권·소송권을 모두 상실했다. 여성 개인은 법적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었으며, 자신의 자산조차 독립적으로 관리할 수 없었다. 이처럼 제도적 억압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이처럼 coverture가 강제하는 구조로 인해 결혼은 곧 여성의 법적 자율성을 상실하는 일이었지만, 여성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결혼을 선택해야 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결정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여성을 그런 결정을 내리도록 몰아넣은 것이었다. 당시 사회적 기대와 법적 한계가 중첩된 현실 속에서 여성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어려웠기에, 결혼은 그들에게 있어 사실상 유일한 경제적 안전망이었고, 법적 권리보다도 당장의 거처와 생계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Pride and Prejudice”에서 Elizabeth가 Mr. Collins의 청혼을 거절한 결정은 단순히 로맨스를 우선시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기준에서 보면 이는 아주 대담한 선택이었고, 구조적 제약에 맞선 주체적 저항이었다. 반면 Elizabeth의 친구인 Charlotte Lucas는 같은 청혼에 대해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Charlotte은 “I’m not romantic, you know; I never was.”라고 말하며, 사랑보다는 안정적인 거처와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최선임을 받아들인다. Elizabeth와 Charlotte의 대비는 당시 여성들이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가 얼마나 달랐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여기에 더하여 장자 우선 상속을 강제하던 관습인 primogeniture 와 이를 법률로써 실현하던 entailment 는 여성의 재산 접근을 훨씬 어렵게 만들었다. Bennet 가문의 딸들은 Longbourn 영지에 묶여 있었던 entailment로 인해 아버지인 Mr. Bennet이 사망할 경우 집에서 쫓겨날 위험에 놓여 있었다. 직계가족 여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직계가족이 아닌 남성에게 재산이 상속되는 것이 법적으로 강제되었고, 그 결과 ‘잘 결혼하기’가 Bennet의 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생존 전략처럼 제시되었다. Mrs. Bennet이 집요하게 딸들을 부유한 남성과 결혼시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Austen의 소설은 딸들의 삶을 단순한 피해자 이야기로 그리지는 않는다. 주인공 Elizabeth는 Mr. Collins의 청혼을 거절하며, 현실적 안정보다 개인적 존엄과 감정의 진정성을 택한다. 이는 여성도 자신의 욕망과 신념을 기준으로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반대로, “Sense and Sensibility”에서는 법적 보호가 부재한 여성들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배제되는지 보여준다. 구체적으로는, 주거 상실이 단순한 주소 변경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 기반과 인간관계까지 흔들 수 있는 삶의 위기가 될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여성이 법 아래에서 완전히 무력했던 것은 아니었다. 형평법(Equity)은 보통법의 경직성을 보완하며, 특히 여성의 재산권 보호에 있어 중요한 우회로 역할을 했다. 형평법 아래에서는 separate estate나 marriage settlement(결혼 계약)와 같은 장치를 통해 기혼 여성도 일정 수준의 재산적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여성이 결혼 전에 자신의 지참금이나 재산을 신탁(trust) 형태로 위탁하고, 자신은 수익권자(beneficial)가 되어 그 수익만을 사용하는 식으로 준비해 둔다면, 남편은 그 재산에 법적 접근 권한이 없었다. 이러한 신탁 내용과 지참금(dowry)을 비롯한 내용이 명시된 결혼 계약을 통해 여성도 법이 허용하는 공간 안에서 최대한의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치들은 단지 예외적 편법이 아니라, 결국에는 Married Women’s Property Act가 제정의 토대가 되었고, 더 나아가 coverture 해체로까지 이어지는 법 개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감정적 소유(affective ownership)라는 개념에 주목할 만하다. 이는 법적 소유권과는 무관하게, 정서적 애착을 통해 특정 공간이나 사물이 ‘내 것’이라고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Elizabeth가 Mr. Darcy의 저택 Pemberley를 방문하며 느끼는 감정은 단순 감탄이 아니었다. 그것은 Pemberley에서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Elizabeth의 주체적 경험이자,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내 것’이었을 수 있었던 대상을 바라보는 몰입이다. 이처럼 감정적 소유는 여성이 재산권에 있어서 법적으로 배제된 현실에서도 ‘내 것’을 가져볼 수 있는 주체성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또한, 살펴봤듯 18~19세기 당시 영국 여성은 토지와 같은 고정된 재산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보석·편지·자수 도구 등 움직일 수 있는 ‘portable property’에 감정적·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는 물질적 제약을 상상과 감정으로 보완함으로써 당시 여성에게 있어서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하는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현대 우리나라 법에서는 감정적 소유를 느끼는 주체의 권리가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오늘날 월세 임차인이 집을 내 집처럼 가꾸고 애착을 느끼는 것은 감정적 소유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물론 법이 이러한 감정 자체를 직접 보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법 제618조·제623조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통해 임차인의 거주 안정성을 보장함으로써, 현실적인 주거 안정이 법적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특정 공간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Jane Austen의 소설은 Primogeniture, entailment, coverture와 같은 법적 배제 속에서도 여성들이 청혼을 거절하거나 반대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통해 현실에 대응하고 주체적으로 생존을 모색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구조 안에서 감정적 소유는 법 없이도 무언가를 ‘내 것’이라 느끼는 방법이자, 자아를 형성하는 방식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법적으로 소유하지 않은 공간에 애착을 느끼며 살아가곤 한다. 현대의 법은 그런 감정을 직접 보호하지는 않지만, 그 감정이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2025년에 우리가 ‘내 것’이라 믿었던 것들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사진과 글은 정말 ‘내 것’일까? ‘올리기’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 우리는 ‘내 것’이라고 믿었던 그것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권리를 넘겨주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이용자 콘텐츠에 대해 광범위한 권리를 주장한다. 실제로 Twitter(X)는 2024년 10월 약관을 개정 하며 사용자가 올린 무엇이든 인공지능(AI) 학습을 포함한 다양한 목적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사용자는 자신의 여행 사진이 자신의 추억, 자신의 콘텐츠라 믿지만, 실제로는 소셜 미디어 기업에 그 사진에 대한 대부분의 권리를 넘겨주게 된다. 사용자의 글, 사진, 영상이 어느 순간 AI 훈련을 위한 데이터셋이 되거나, 더 치밀한 광고 타겟팅을 위한 재료가 되어, 결국 플랫폼의 자산이 되는 구조인 것이다.
이는 Jane Austen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과도 닮은 점이 있다. 그들은 법적으로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지만, 감정적 소유를 통해 자신이 살던 공간에 애착을 갖고, ‘내 것’이라고 인식했다. 물론 당시 여성들은 지금의 소셜 미디어 사용자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제도적 억압 아래 있었기에 두 상황이 정확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법적 권리의 부재와 감정적 애착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 가지 중요한 차이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법적 권리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반면 소셜 미디어에 콘텐츠를 넘기는 사용자는 그것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이 영원히 ‘내 것’일 거라 믿는다. 실제로는 감정적 소유에 불과한 것을, 법적 소유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Jane Austen 소설 속 여성들에게 감정적 소유의 대상이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었다면, 오늘날 사용자들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은 자신의 일상과 감정이다. 우리가 소유한다고 느끼는 대상은 훨씬 더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되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을 넘겨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18~19세기 영국의 ‘coverture’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결혼한 여성은 독립된 법적 인격체로 간주되지 않았고,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재산은 남편의 것이 되었다. 사용자는 ‘약관 동의’나 ‘가입’이라는 행위를 통해 플랫폼과 일종의 ‘디지털 결혼’ 관계를 맺고, 스스로 선택한 ‘디지털 coverture’ 하에 놓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용자의 콘텐츠는 법의 보호 아래 플랫폼의 것이 된다. 저작권은 창작 순간 자동으로 발생하기에 사용자의 권리가 직접적으로 박탈되거나 소멸하지는 않지만, ‘양도’와 같은 계약적 장치는 충분히 그 권리를 무력화할 수 있다. 특히, 스스로가 “이건 어차피 내 것이니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넘겼음을 잊는다.
다행인 것은, 이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는 소셜 미디어 사용자가 많아지고 있고, 이에 응답하듯 규제 기관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EU 내에서는 소셜 미디어 콘텐츠가 대규모 AI 학습에 활용되는 문제에 대해, 사용자의 플랫폼 사용과 약관 동의를 근거로 한 ‘정당한 이익’이라는 소셜 미디어 기업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개인 정보와 데이터 주권을 가장 강력하게 보호하는 법 중 하나로 평가받는 유럽의 일반 데이터 보호 규칙(GDPR)을 해석하고 시행하는 기구인 유럽 개인정보 보호 이사회(EDPB)는 2024년 12월, 소셜 미디어 콘텐츠가 AI 훈련에 사용되는 것에 대해 사용자에게 ‘거부 상태가 기본값인 명시적인 선택권(opt-in)‘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 했다. 이에 따라 Facebook, Instagram과 Twitter(X)는 유럽 사용자들에게 선택권을 안내하거나, 유럽 사용자의 데이터로 AI 학습을 전면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약관 동의했잖아’라는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감정적 소유는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라, 미래에 법이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될 권리를 직관하는 감각일 수 있다. 법은 감정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상상보다 보수적으로 사고한다. 하지만 감정과 상상은 언제나 법보다 앞서 현실을 살아간다. 신탁과 결혼 계약을 통해 당시 여성의 재산권을 제한적으로나마 보장했던 형평법이 결국 coverture의 전복을 이끌었듯, 제도가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시작된 감정은 언젠가 제도의 변화를 촉진해 왔다. 감정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었지만, 법은 늦게나마 따라왔고, 현실을 바꿨다.
지금 우리가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은 단순 게시물이나 데이터 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이자 기억이고, 정체성의 일부이다. 그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플랫폼에 넘기면서도 여전히 ‘내 것’이라 믿는 착각은 이제 의심받아야 한다.
감정만으로는 현실을 지킬 수 없고, 권리로 이어지지 않는 소유는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감정에서 출발하되, 착각에서 자각으로, 애착에서 권리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최소한 우리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무엇을 넘기고 있는지 자각하고, 플랫폼뿐 아니라 법과 제도를 향해 잃어버린 통제권을 되찾겠다는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한다.